로그인 회원가입 HOME

신앙생활

  • 예배시간
  • 행사일정
  • 설교말씀

Home > 말씀 > 예배/말씀

제목 [기본] 하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1-4> 2017. 2. 5 등록일 2017.02.06
글쓴이 관리자 조회 240

 여러분, 구제가 무엇입니까? 야고보서 1장 27절에서, 야고보 사도가 가장 선명하고 확실하게 정의를 했습니다. ‘구제는 과부와 고아가 어려움을 당할 때, 돌보아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난한 자, 병든 자, 고통당하는 자들을 외면하지 아니하고, 돌보아 주며, 자기의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구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제야말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라고 했습니다. 구제는 경건이라고 그랬습니다. 정결한 경건, 깨끗한 경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경건이라고 야고보는 정의를 했습니다. 그만큼 구제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의 하나님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릅니까? 호렙산에 임하시면, 산이 진동하고, 구름이 온 산을 덮고 불꽃이 타오르고,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말하면, 모든 백성들이 부들부들 떨면서 땅에 무릎을 꿇는, 그런 이미지가 있지 않습니까? 구약의 하나님은, 굉장히 무서운 하나님, 공의로운 하나님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인식되고 있지만, 그 배후에는 사랑과 자비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하나님은, 특별히 가난한 자들을 늘 염두에 두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주자주 교훈 하시는 것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볼 수가 있습니다. 신명기 15장에 보면, 특별히 가난한 자를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신명기 15장 11절입니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땅에서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끊이지 아니하겠다고 전제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이 택한 백성 가운데는 가난한 자가 하나도 없도록 하실 것 같은데, 역시 세상인지라 가난한 자가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반드시 가난한 자들에게 손을 펴라는 말입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라는 말입니다. 구제하라는 말입니다. 반드시 구제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만큼 가난한 자들을 마음에 두고 계십니다. 그래서 ‘과부와 고아는 내 것’이라고까지 심지어 말씀하십니다. 그뿐 만이 아닙니다. 면제년이라고 하는 특별한 제도를 만들어서 시행하게 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이 빚을 지게 되면, 사실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느냐 하면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자꾸 빚만 쌓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5,6년 빚이 쌓이다 보면, 그 다음에는 채주가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빚을 안 갚으니까, 결국은 아들을 종으로 빼앗아 가고, 딸을 종으로 빼앗아 가고, 나중에 부인까지 빼앗기고, 자기도 종으로 팔릴 수밖에 없는 아주 피 맺힌 극한 상황에까지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시고 면제년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시행하게 하셨습니다. 빚을 진 사람이 7년째가 되면, 즉 면제년이 되면(신15:9, 31:10), 반드시 그 빚을 전부 탕감해 주라는 것입니다. 얼마를 빚졌던지 간에, 더 이상 받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가 숨을 쉬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제도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나중에 고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제도를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가난한 자가 얼마나 고통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땅에 저주가 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십니다. 신명기 15장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가난한 자를 돌보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복을 주마” 이게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신약의 하나님을 생각할 때는, 어떤 이미지가 떠오릅니까? 저 천상에 있는 영광의 보좌를 스스로 포기하시고, 이 세상에 직접 찾아오신 하나님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눈높이로 내려오신 하나님, 얼마나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신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이 세상에 오시면서,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리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먼저 전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뿐 아닙니다. 주께선 일평생 가난한 자, 병든 자, 세상에서 사람대우 받지 못하는 자들 편에 서 계셨습니다. 이것이 신약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습입니다. 따라서 이 지구상에 지금 세워져 있는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세상사람 앞에 교회의 이미지는 어떻게 비쳐져야 합니까? 작은 예수로 비쳐져야 합니다. 교회를 드나드는 모든 성도는, 작은 예수로 세상사람 앞에 비쳐져야 되는데, 그 작은 예수는 어떤 모습입니까? 가난한 자요, 가난한 자 편에 서 있는 자요, 사랑을 실천하는 자의 모습으로 세상 사람들 앞에 비춰지지 않았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구제라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이렇게 중요한 것일수록 사람들이 외식하기가 쉽다는 사실입니다. 외식이 무엇입니까? 겉을 싸는 것, 겉을 포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외식을 사람 앞에서 나팔을 분다는 말로 비유하셨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자기 자랑 하기 위해서, 선한 일을 하는 것을 외식이라고 합니다. 구제를 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이 외식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서기관들이 그랬습니다. 이 구제는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가장 최고의 선입니다. 구제를 좀 했다 하면, 세상 사람도 그의 덕을 기리며 성자로 대우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구제를 대단하게 봅니다. 그러므로 나도 모르게 구제하면서 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존경과 찬사를 받기 위해 구제한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본문인 마태복음 6장 1절에서 이렇게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의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구제할 때에 사람들에게 나팔 불려고 하지 않도록 주의해라. 그런 함정이 너희 앞에 있다”는 것을, 주님이 경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백에 하나라도 이런 외식의 근성이 남아 있으면, 이 시간,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이런 잘못된 것들을 다 청소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이것은 나쁜 것입니다. 야고보의 말대로 하면, 이것은 정결한 경건이 아닙니다. 이것은 냄새 나는 경건이요, 외식하는 구제입니다. 이것은 불결한 경건이요, 하나님이 보실 때 얼굴을 돌리시는 경건입니다. 이렇게 외식을 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존경을 받으면, 하나님의 상을 잃어버린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구제를 하는 사람에게 다 상을 준다고 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구제를 하는 사람에게만 상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3절과 4절을 보십시오.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은밀하게, 하나님만 알 수 있도록 구제를 할 때, 하나님이 그 구제를 좋아하시고, 하나님이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고, 하나님이 그 구제를 마음에 담아 기억하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하나님이 불러서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왼손이 모르게 구제하는 것’ 여기에는 두 가지의 암시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동기가 깨끗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동기가 순수해야 됩니다.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기쁘게 구제한다면, 그 구제는 아름다움 동기, 순수한 동기, 깨끗한 동기를 지닌 구제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구제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왼손이 모르게 하는 구제가 어떤 것이냐 하면, 다 잊어버리는 구제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얼마 주었다고 일기장에 써 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언제 누구를 만나서 겉옷을 벗어줬다고 컴퓨터에 입력시키고 나중에 검색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 잊어버려야 됩니다. 예수님의 유명한 비유를 여러분이 기억하시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온 인류를 주님 앞에 불러 모으신다고 합니다. 어떻게 불러 모으실지는 모릅니다. 그리고는 천사들이 딱 갈라놓는다고 합니다. 오른쪽에는 하나님을 잘 섬긴 거룩한 성도들이 모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일컬어 양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왼쪽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모든 세상 사람들, 그리고 예수를 믿어도 엉터리로 믿었던 모든 사람들을 전부 그 자라에 모은다고 합니다. 그들을 일컬어서 염소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런 날이 앞에 있다고 생각하면, 어떤 때는 소름이 끼칩니다. 예수님께서 왼쪽에 있는 염소들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가난한 자를 봐도 못 본 체했다. 너희들은 감옥에 갇혀서 고생하는 자를 한 번도 찾아간 일이 없다. 너희들은 병든 자를 보아도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고통당하는 자를 봐도 못 본 척하였다.” 그랬더니 염소들이 대뜸 이렇게 소리를 쳤습니다. “예수님! 언제 우리가 안했습니까? 2016년 12월 25일, 우리가 저 고아원을 찾아간 것을 모르십니까?” 어떻게 날짜까지 다 외우고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불행하게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나는 모른다.” 이것이 엉터리 구제입니다. 조금 구제 한 것까지, 다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양들에게 이야기 하십니다. “너희들은 가난한 자를 부지런히 찾아보았구나. 감옥에 갇힌 자를 불쌍히 여겼구나. 병든 자를 위해서 너희들이 많은 희생을 했구나. 감사하다. 너희들이 2017년 1월 22일 날, 저 설을 쇠지 못하는 가난한 자들을 찾아가 저들을 도와준 것을 내가 기억하고 있단다.” 그러자 양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 우리는 도무지 기억이 안 나는데요. 언제 우리가 그렇게 했습니까? 저는 도무지 기억이 안납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나는 다 알고 있단다.” - 이것이 진짜 구제입니다. 왼손이 모르게 하는 구제는, 해 놓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구제입니다. 우리가 작은 예수로서 이 세상 앞에 빛과 소금이 되려면, 구제를 등한이 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헌금하는 것으로 구제한다고 하는 내색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가끔 우리에게 거지를 보낼 때가 있습니다. 실직 당한 자를 보낼 때가 있습니다. 병든 자를 보낼 때가 있습니다. 가끔 스쳐 지나가던, 전에는 몰랐던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에게 눈을 고정시키도록 만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외면하시면 안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얼마나 가난한 자들을 여러분이 마음에 두고 기도해 줍니까?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 여러분이, 없는 중에서도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정성을 쏟고 계십니까? 이 말씀대로 우리 모두 실천하도록 노력합시다. 그래서 우리도 살고, 가난한 이웃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만듭시다. 그리고 주님이 오시는 그날, 여러분을 은밀히 보고 계시던 하나님이, 은근히 마음에 두고 계시던 하나님이, 여러분 모두를 따로 불러서 특별히 위로 하시며, 상을 주시는 놀라운 행복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