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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부활의능력으로 사는 비결 <요 11:1-4, 43-44> 2017.04.23 등록일 2017.04.25
글쓴이 관리자 조회 126

수년 전, 미국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이 어린이들에게 <살아있는 인물 중에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한 사람씩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손을 들고서 <빌 게이츠>를, 어떤 학생은 <위렌 버핏>을, 어떤 학생은 <오프라 윈프리>를, 어떤 학생은 <마더 테레사>를, 어떤 학생은 <빌리 그래함>의 이름을 열거했습니다. 그런데 한 소녀가 손을 들더니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정색을 하면서 "나는 너희들에게 살아있는 인물 중에서 존경하는 이를 말해보라고 하지 않았니?" 그랬더니, 이 어린 소녀는 선생님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우리는 지난주일 부활의 축배를 가졌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을 믿음으로 수용함에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날마다 일상의 삶의 장에서 우리가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아갈 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계셨을 때 그를 따른 사람들에게 이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는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베다니>에서의 나사로의 부활 사건이었습니다. 이 <베다니>라는 마을은 예루살렘으로부터 감람산을 넘어 감람산 동편 쪽으로 약 3-4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예로부터 이 마을은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의 나환자들이 살았던 마을입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통해서, 자주 이 마을을 방문하신 것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난한 마을에서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부활의 위대한 메시지를 선포하셨고,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인간의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죽음 건너편에 약속된 부활의 놀라운 사실을, 한 사람에게 죽음으로부터 부활의 산 기적을 베푸시므로 말미암아,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 삶에 대한 시청각적 교훈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 <베다니 마을>로 가서, 여기에서 우리들의 부활에 대한 단순한 교리적 고백, 부활의 믿음을 넘어서서 날마다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 삶의 비결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부활의 능력으로 날마다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주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고난은 온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인생을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은 극복하기 힘든 고난이 찾아올 때입니다. '예수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내게도, 왜 이렇게 인생의 힘든 사건들이 일어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역동적인 부활신앙을 갖고 인생을 살려면 무엇보다 주님이 사랑하는 자들에게도 고난은 올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살아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뜻밖의 고난이 성도에게 찾아올 때 먼저, 우리가 기억할 일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셨거나 나를 버리심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이런 고난이 찾아올 때 우리가 놀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이런 시험들을 만날 때, 우리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아니 도대체 이런 시험을 만나서 우리가 어떻게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두번째 교훈입니다.

두번째로, 성도의 고난 건너편에 부활의영광이 예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다시 말하면 오늘의 질병이라는 고난 저 건너편에 영광의 사건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인 <나사로>의 질병 소식을 들으시고 그에게로 당장 달려가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나사로>가 아파 누웠다가 예수께서 오셔서 치유받아 건강을 회복하는 일과 죽음에서 다시 일어나 부활하는 일 중에 어떤 일이 더 위대한 사건이었을까요? 설명의 여지가 없이 당연히 부활의 사건이 더 위대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 <나사로>의 질병과 사망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부활이라는 엄청난 약속을 계시하시는 하나의 예증으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사로의 질병의 고난, 심지어 그의 죽음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섭리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성도의 고난에는 준비된 하늘의 뜻이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부활의 능력으로 날마다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세번째로, 말씀의 능력으로 사망의 결박을 풀고 살아감을 배울 수 있어야만 합니다.

역동적인 부활의 능력으로 인생을 사는 세번째 비밀은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를 아직도 매고있는 사망의 결박들을 풀고사는 방법을 학습할 수있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는 말씀을 선포하시자마자 <나사로>는 살아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나사로>는,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저는 이 모습이 오늘의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예수믿는 자가 되었으나,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성도들의 모습과 정화학게 일치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는 나오지만, 말씀의 능력, 혹은 성령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성도들의 모습이 바로 나사로의 상태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나사로>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44절) 이때 비로소 <나사로>는 부활의 능력을 온 몸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이 부활의 능력이 바로 오늘 여러분들의 능력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자신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순종하는 훈련을 통해, 주님의 함께 하심을 문자 그대로 경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변하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더이상 사망의 베옷을 입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을 매고 있던 사망의 결박을 벗어 던지고 성령의 능력을 날마다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고난 속에서도 주와 함께 찬양하고 춤추며 사는 놀라운 역동의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 여러분들 모두는 이 부활의 능력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아가는 그런 복된 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주님은 우리와 더불어 춤추며 가고 싶어 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온전히 말씀의 능력에 자신을 의탁한다면, 성령은 오셔서 우리의 모든 사망의 결박을 풀고 춤추게 하실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 부활의 계절에 이런 춤추게 하시는 말씀의 능력, 주의 임재의 능력을 날마다 경험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