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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너희에게 열정이 있느냐? <왕하 13:14-19> (2017.6.11) 등록일 2017.06.15
글쓴이 관리자 조회 136

열정이란 무엇입니까? 이 <열정>이라는 단어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모든 것을 바치며 살아가는 모습을 담고 있으며 단순히 시간을 때우거나, 맡겨진 일을 적당히 해치워버리는 자세와 태도를 거부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성공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삶의 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웹스터 사전>에는 이 단어가 ‘정열’ 그리고 ‘불타는 열의’또는 ‘관심’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템플턴>은, 이 단어를 “우리가 좋아하고 간절히 바라는 어떤 목표를 추진하도록 고무하는 활동적인 에너지”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열정>의 영어 표현인 enthusiasm은 헬라어 entheos에서 유래한 말로 <en>은 ‘함께’라는 의미이며, <theos>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어원적인 의미와 사명을 동시에 생각해보면 <열정>이란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의 에너지’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정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에게 나타나는 삶의 에너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도 이와같은 <열정>이 넘쳐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제가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함께 나누려고 하는 말씀은 바로 이것에 관한 말씀입니다. 한 인간에게 있어서, 그 일이 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하시지만, 그 질문의 실제 내용은 알고보면, 딱 한가지입니다. “너희에게 열정이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대 선지자<엘리사>와 당시의 왕인 <요아스> 사이에서 있었던 대화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죽을 병에 걸려서, 이제는 죽게 되었습니다. 살아생전 엘리사가 이룬 것들은 너무나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와 그의 선생인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많은 기적을 체험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두 선지자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국가적 위기를 모면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제 그 대선지자 엘리사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당장 오늘 밤이 될지, 내일 아침이 될지, 이스라엘은 아람 나라의 침공을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일이었는지 왕인 요아스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본문 14절 말씀입니다.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이 고백은 ‘나라 전체의 방패막이가 되는 우리의 의지할 유일한 분이시여!’라고 고백하는 말입니다. 그런 엘리사가 죽게 되었으니, 왕은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런 <요아스 왕>에게 이제 <엘리사>가 지시를 합니다. 그것은 자기는 하늘나라로 떠나지만, 자기가 없더라도 나라를 지킬 방도를 가르쳐 주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전에 <엘리사>는 지금, <요아스 왕>에게 한 가지 테스트를 합니다. 그리고 테스트 여하에 따라서 나라의 운명이 갈리도록 정해 놓았습니다. 한편으로 그 테스트로 선지자는 왕의 진심을 떠 보기로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아스 왕>이 받은 테스트는 ‘순종 연습’이었습니다. <엘리사>는 자기를 찾아 온 <요아스 왕>에게 활과 화살을 가지고 오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활을 잡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활을 잡은 왕의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어 안수합니다. 그만큼 선지자 본인도, 이스라엘의 안위를 걱정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동쪽 창을 열라고 합니다. 창문을 열자 이제는 활을 쏘라고 합니다. <요아스 왕>이 그대로 순종합니다. 활을 쏜 후 <엘리사>가 이제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지금 쏜 이 화살은, 여호와의 구원의 화살이라는 것입니다.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라는 것입니다. 이 화살은, 요단 강 건너의 아벡에서의 아람에 대한 승리를 상징한다(왕상 20:30)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요아스 왕>에게 그 화살들을 집어서 땅에 칠 것을 명합니다. 엘리사의 생각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잘 들었다면 왕은 충분이 그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순종할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들은 <요아스 왕>은 화살로 땅을 톡톡톡 세 번 치고 말았습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잘 표현이 되어있지 않지만, 히브리어 성경에 보면 그 화살로 계속 열정적으로 땅을 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화살로 땅을 치라고 했을 때, <요아스 왕>은 아람을 치듯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쳤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요아스 왕은 겨우 세 번만 치고 그친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보니까, <요아스>의 이런 모습에 <엘리사>가 진노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소리칩니다.
“적어도 대 여섯 번은 쳤어야지요? 왜 세 번만 치고 맙니까? 이제 왕은 아람을 단지 세 번 정도만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결과는 엘리사가 말한 그대로 됐습니다. 후에 이스라엘은 아람 왕 벤하닷을 맞아서 겨우 세 번만 승리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오늘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화살로 땅바닥을 세 번 치든, 대 여섯 번 치든,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 문제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전후 사정을 알고 나면, 그것은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중요한 행위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아스 왕은 엘리사의 명령에 당혹감을 감추고, 선지자의 명령에 순종했지만, 그의 순종에는 마음과 믿음이 담겨져 있질 않았습니다. 선지자는 분명히 왕에게 아람을 진멸하도록 치라는 경고를 해줬습니다. 그리고는 화살을 건네주면서 땅을 치라고 했던 겁니다. 분명히 왕은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왕은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왕의 행동에는 열정이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이 요아스 왕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이야기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열정에 대해서, 언제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오늘 여러분 중에도 혹시 이 <요아스 왕>처럼, 대충 대충 화살을 톡톡 치는 사람은 없습니까? 대충 대충 그렇게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열정이 잠자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갈망하는 것이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잖습니까? 여러분들은 다들 꼭 이루고 싶은 게 있고, 그것을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들이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열정의 근원은 갈망입니다. 갈망이 있어야 열정이 생기는 법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가장 갈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종교계의 노벨상이라는 ‘템플턴 상’을 제정한 존 템플턴은, 『열정, 행복한 변화로 이끄는 내 삶의 기관차』라는 책에서, “열정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나의 열정을 주위로 전염시켜라. 위대한 열정의 씨앗은 이미 내 안에 있다. 당신의 삶을 열정으로 변화시켜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머슨>은, “열정 없이 성취된 위대함은 없다.”고 했습니다. 열정은 전등을 밝히는 발전기와 같은 것으로 인간을 빛나게 만드는 일입니다. 진젠도르프 백작 (Count Zinzendorp)은, “내게는 오직 한 가지 열정이 있다. 그 열정은, 주님, 주님, 한분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열정은 결국 세상의 가장 위대한 선교 조직체의 하나인 모라비안 교회를 일으키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에게도 이런 열정이 회복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열정으로 여러분 각자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사역을 충실히 감당해 내시는 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열정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는 구원이 되며, 여러분에게는 풍요로운 생애를 선물할 것입니다. 그런 축복이 여러분 삶 가운데, 폭포수처럼 끊임없이 흘러넘치게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