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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왜 하필 마리아였을까? <눅 1:26-38> 2016. 12. 18 등록일 2016.12.18
글쓴이 관리자 조회 397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 즉 유태인들은, 크리스천을 <크리스천>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노쯔리(Notzri)” 이렇게 부릅니다. 이는 ‘나사렛 촌놈들이다’는 말입니다. 즉 약간의 경멸의 뉘앙스가 들어있었던 그런 말로, 부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나사렛 마을에서도 <마리아>를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이 소녀를 통해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신 사건, - <마리아>가 이처럼 하나님의 기적의 도구로 쓰임 받은, 어떤 원인이라도 있었을까요? 본문 30절에 보면, 천사가 마리아게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우리말 성경의 뉘앙스로 생각하면, 수동태로, 피동태로만 읽혀집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은혜를 입은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원어 성경에 보면, 그리고 대부분의 영어 성경 번역에 의하면, “You have found grace"와 "favor with God"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은혜를 이 여인이 찾았다.’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녀가 하나님의 은혜를 능동적으로 추구한 모습이 있었고, 하나님이 이것을 귀하게 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소녀의 어떤 사람됨이, 이 소녀로 하여금, 하나님의 기적의 도구인,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주목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첫째로, 겸손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8절에 보시면,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그녀가 하나님께 은혜 받은 자임을 통보합니다. 어떻게 통보합니까? 본문 2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어떤 반응입니까? 29절을 보십시오.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마리아>는, 그것을 상당한 의외의 사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제가요? 제가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고요?” 놀라움으로 받아들였다고, 오늘 성경은 기록합니다. 본문 38절을 보시면,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를 볼 수가 있습니다. 38절에 보시면,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말이 반복됩니다. 48절에 보시면, 소위 <마리아의 찬양> 가운데서, 마리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48절에,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하나님, 저는 주님 앞에 한낮 비천한 여종일 뿐입니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그런 비천한 종입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님의 도구가 되요?” 있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다는 황송함으로, 이 하나님의 선언을 받아들이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 여기서 우리는, <마리아의 겸손함>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의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확인하는 일관성 있는 하나의 진리가 있다면,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쓰시는가? - “겸손한 사람”을 쓰신다는 것입니다. 이 마리아가,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배경 속에는, 그녀의 겸손한 삶의 모습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적해야만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교만한 사람을 쓰시지 않을까요? 교만한 사람은, 그 일이 성취가 되면, 그 성취된 것이 틀림없이 자기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다릅니다. 그냥 표현만 겸손한 것이 아니라,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주께서 나를 통해 이루셨다. 나는 그냥 들러리고, 주의 도구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그 일의 성취의 결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겸손한 사람을 찾고 있는 이유라는 것을 아십시오. 주께선 지금도 그래서 겸손한 사람을 찾습니다. <마리아>같은 사람을 찾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 모두는, 마리아처럼 겸손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도구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34절에 보시면, <마리아>가 천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마리아는 아직 남자를 접촉하지 않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그런 여인으로서, 자기를 통해서 메시아가 탄생한다고 그러니까,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라는 진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래서 천사는, 계속 설득합니다. 36절에서 <엘리사벳>의 예를 듭니다. 자기의 친척이었는데, 세례 요한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이 임신케 하고, 잉태케하고, 그를 낳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예로 들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는 것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랬더니 38절에서, 드디어 마리아의 궁극적인 반응이 나옵니다. 38절 보십시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그녀는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면서,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다. 그 말씀을 받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얼마 후에, 이제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마리아를 관찰했던 <엘리사벳>은, 마리아에 대해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어떤 여인이라고 합니까? “믿은 여인”
 여러분, 가까운 사람에 의해서, 내가 믿음의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남편이, 여러분 아내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그분은 진짜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인정받으면 그건 진짜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내가 남편에게 인정받으면 진짜입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마리아>는 평가되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믿음의 사람을 통해 일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불신자를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외적인 것이고, 하나님의 보편적인 섭리의 방식은, 자기를 신뢰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의 일을 펼쳐 가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기적의 도구로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리고 우리가 그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거기에 주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믿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헌신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소녀 마리아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 이제 기꺼이 자신의 몸을 헌신합니다. 이천년 전, 이 소녀 마리아는, 기꺼이 자신의 몸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34절에 보면, <마리아>는 천사에게, 자기가 어린 처녀로서 메시아를 낳는 일에 쓰임 받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물었습니다. 그때 35절에서, 천사가 이렇게 말하죠?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도구로 네 몸을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때 마리아는,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그렇게 바쳤어요. 마리아가 바로 이 대답을 한 그 순간이, 저는 헌신의, 결단의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결단이, 쉬운 결단이 아닙니다. 마리아가 이 고백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남자를 경험하지 않은 채로, 초자연적인 임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문날거 아닙니까? 이제부터 <마리아>가 직면해야 할, 조롱과 비난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고대에서는, 이렇게 미혼모가 되게 되면, 어린아이를 잉태하고 낳게 되면, 돌팔매질을 당해 죽어도, 변명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당시의 분위기였습니다. 마리아가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이 고백을 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녀 마리아는, 예수님의 육신적 어머니가 된 것입니다.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그 대가 지불을 각오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헌신은, 언제나 대가지불을 요구합니다. 여러분,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그 분야에 의미 있는 자취를 남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리아가 괜히 예수님의 어머니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녀가 지불했던, 그 고통의 대가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래서 일찍이 그 <시므온>이라는 예언자는, 누가복음 2장 34절과 35절에서, 마리아가 아기를 낳은 것과, 그의 일생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내다보면서, 의미심장한 예언을 남기게 됩니다. “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거기서 이 표현을 잘 주목해 보십시오.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마리아의 일생이, - 그 칼에 찔린 듯 고통을 받는 듯한 일생. 그 아이를 잉태하자마자, <마리아>가 당했을, 여러 가지 경험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고통당했겠습니까? 그리고 마침내, 그 어느날, <마리아>는, 자기 앞에서 사랑하는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는 모습을 보아야만 했었던, 그 고통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아들이신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짧은 인생은, 문자 그대로 큰 고통의 인생이 아니었습니까? 십자가는, 그런 고통의 절정이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큰 고통을 받으셨기에, 그리고 거룩한 피를 흘렸기에, 그는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시고, 오늘날, 우리에게서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우리의 구주, 주님이 되신 것이 아닙니까? 이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그의 발자취를 따르며, 쓰임 받기를 원하신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무 고통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천 여 년 전 성탄절에, 그 분은 왜 오셨습니까? 그 분이 이 땅에 태어나신 것은, 죽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성탄의 의미를 깊이 붙잡는, 이 계절이 되고,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