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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눈을 들어 희망을 바라보라. <창 13:14-18> 2017. 1. 1 등록일 2017.01.03
글쓴이 관리자 조회 563

 우리 인간에게는, 두 종류의 눈이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의 눈이요, 다른 하나는 영의 눈입니다. 육신의 눈에는, 눈을 통해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만, 영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그것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함께 애굽에서 벧엘로 귀한하여, 서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영토를 분배하는 내용입니다. 육축과 은금의 풍부한 복을 받은 아브라함과, 역시 양과 소가 떼를 이루는 축복을 받은 롯이, 점점 소유가 많아지면서 함께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양쪽 집안의 종들이 물 때문에 서로 싸우는 것이 잦아지게 되자,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신사적인 제의를 하게 됩니다. “너와 나는 한 골육이 아니냐? 그런데 네 목자와 내 목자 사이에는 시비와 분쟁이 계속 되고, 또한 우리 주변에는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이 진을 치고 있지 아니 하냐, 우리 사이에 시비와 분쟁이 계속 지속되는 날에는 우리 모두 이방인의 밥이 되기가 쉽다. 그러니 서로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 가며 평화적으로 땅을 나누자.” 그리고 “우선권은 너에게 줄 테니까 네가 먼저 택하라”고 제의를 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더 놀라운 양보적 제안을 합니다. 본문 9절을 보십시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 얼마나 놀라운 제안입니까? 자신의 우선권을 다 포기한 제안입니다. 아브라함에게도 먹여 살려야 할 식솔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좋은 땅이 필요했습니다. 더구나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은 연로한 몸으로 식솔들을 책임져야 하는, 어찌 보면 젊은 롯보다 더 불리한 요소를 더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자신의 기득권을 다 포기합니다. 아브라함은,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첫째로, 환경적 절망에서 눈을 떼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삼촌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 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이 같은 제의를 하자마자, 롯은 눈을 들어 지형을 관찰하고 나서, 욕심스럽게도 요단강 물줄기가 흐르는 기름지고 넓은 들판, 그리고 물이 넉넉한 소알까지의 윤택한 지역의 광활한 평야와 초장을 먼저 선택합니다. 거기에다 물물교환이 가능한 소돔성과 고모라성 일대까지 다 골라잡고는, 바삐 그 자리를 떠나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은, 결국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아브라함이 “네가 먼저 선택하라.”고 제안했을 때,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선뜻 소돔과 고모라 지역을 선택한 롯의 선택은, 무엇보다 세속적인 안목으로 바라본 세속족인 관점에서의 선택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롯이 선택한 그곳을 가리켜 성경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롯이 선택했던 소돔과 고모라는 물이 넉넉한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풍요를 누렸던 것만큼, 죄악 또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볼거리가 많았던 것만큼, 죄악도 많았고, 범죄 또한 넘쳐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소돔과 고모라 땅은, 하나님의 유황 불 심판을 면하지 못하게 됩니다. 육신적인 안목만을 가지고, 그 소돔과 고모라 땅을 선택했던 롯도, 결국 그 심판을 피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심판으로 말미암아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그처럼 소중한 가치를 두었던 재산마저도 모두 잃고, 한마디로 패가망신을 하고,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브라함은, 롯이 풍요로운 곳을 먼저 다 선택하는 바람에, 졸지에 물을 잃어버리고, 평지를 잃고, 초장과 성읍을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상황에 처한 아브라함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환경적인 절망으로부터 눈을 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도 혹시 이런 절망적인 상황이 찾아온다면, 육신의 눈으로 그 절망적인 상황만을 바라보지 말고, 믿음의 눈을 뜨고 믿음으로 바라보시고, 믿음으로 새해를 향해서 힘차게 걸어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눈을 들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4절을 보십시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롯이 좋은 곳을 선택하고 떠나고 난 이후에, 허전함과 실의에 빠져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 눈을 들어라.” 여기 “눈을 들라”는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롯이 가는 곳을 바라보지 말고 눈을 돌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네가 바라보아야 할 곳을 바라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라볼 곳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두 말할 것도 없이 새로운 삶을 위하여 방향을 전환하라는 것입니다. 쓰라린 과거나 패배의식에 더 이상 사로잡히지 말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쳐다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7년 이 새해에는 환경을 바라보지 맙시다. 처한 형편을 인해 슬퍼하지도 맙시다. 암울한 현실로 인해, 땅이 꺼지듯 한숨 지며 바라보지도 맙시다. 그 대신 눈을 들어 우리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 은혜만 바라보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4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실의에 빠진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실까요? 그것은 곧 “높은 이상과 큰 가능성을 그려보라”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15절입니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그러면 네 눈에 보이는 그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물질에 축복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영원히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꼐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이 이것뿐일까요?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이는 번영의 축복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17절을 보십시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는 비전을 가졌으면 최선을 다해 행동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눈을 들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종과 횡으로 행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실천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대로, 아브라함은 동에서 서로, 서에서 남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녔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그가 밟는 땅은 다 그의 것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잘 되는 번영의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은총이, 오늘 여러분들에게도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도 않고, 행치도 않으면서, 복만 받겠다고 하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일례로, 수입 가운데서 십분의 일의 가치를 가지고도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해드리지 않으면서, 복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에 보이는 조건 때문에 흔들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환경이 변했다고 낙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환경만 바라보고, 환경만 따르다가 예수님을 버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