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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행복과 성공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20170820) 등록일 2017.08.20
글쓴이 이영한 조회 117

요즈음 유행하는 젊은이들의 패션을 보면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새 옷을 사 입거나, 새 신발을 사서 신는 것보다는 누군가가 쓰던 것을 얻어 쓰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학교 너머 살던 어릴 때 친구 상식이 생각이 납니다. 공부도 하지 못하고 책 보따리를 둘러메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집이 무척이나 가난했던 상식이는 그날따라 신을 신발이 없어서 동네 형이 신던 신발을 신고 왔었습니다. 그 큰 신발을 신고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웃기 시작했습니다. 짝지인 여자 아이까지 말입니다. 상식이는 창피하여 울면서 집으로 도망치듯 돌아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왜 그렇게 창피했을까요? 요즈음 아이들 보니까 터덕터덕 하는 소리가 다 날 정도로 큰 신발을 신고 다니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탁소에서 하는 일 가운데 ‘짜집기’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옷이 떨어졌을 때 세탁소에 부탁을 하면 감쪽같이 거의 표 안 나게 기워 주는 기술입니다. 그런데 이제 짜집기 기술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너덜너덜하게 떨어져 속살이 보이는 것이 자랑이 되었으니까요. 행복의 기준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발이 크다고, 옷이 떨어졌다고 우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그것이 자랑이 되고 행복해 하는 아이도 있으니 말입니다.


한 가정에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형제의 아버지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였고, 어머니는 술 취한 아버지를 향해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형제는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20년 후 형제의 인생은 완전히 갈리고 말았습니다. 형은 의과대학의 저명한 교수가 되어 '금주운동'을 전개했고, 동생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자신의 현실에 대해 동일한 답변을 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때문에…” 형은 비극적인 환경을 교훈 삼아 희망의 삶을 개척했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환경의 노예가 되어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그대로 이어받고 말았습니다. 고통과 시련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도약의 기회로 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절망의 늪에 함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환경을 탓하기만 하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환경 속에 흐르는 비극을 막지 못하는 법입니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센더 플레밍의 연구실은 매우 열악하고 협소했습니다. 창문의 유리창은 깨져서 바람과 먼지가 들어왔습니다. 그는 이 연구실에서 곰팡이에 대한 연구에 몰입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깨진 창문을 통해 날아온 곰팡이의 포자를 현미경으로 관찰한 후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곰팡이에 페니실린의 원료가 숨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는 이것을 토대로 페니실린을 만들었습니다. 몇 년 후 한 친구가 플레밍의 연구실을 방문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형편없는 연구실에서 페니실린을 만들다니… 만약 자네에게 좋은 환경이 주어졌다면 엄청난 발견들을 했을 텐데…” 플레밍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이 열악한 연구실이 페니실린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네. 창틈으로 날아온 먼지가 바로 페니실린의 재료가 되었던 거란 말이네!” 그렇습니다. 행복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성공은 환경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과 불행은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좌우되고, 성공과 실패는 부여된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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