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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아니하면 (20170910) 등록일 2017.09.12
글쓴이 이영한 조회 96

올 여름 고향에 갔을 때 방에 누워 있는데 나방 한 마리가 방충망의 찢어진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형광등으로 날아들었습니다. 형광등 케이스를 만지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온갖 몸부림 끝에 형광등 케이스 속으로 들어가는데도 성공했습니다. 잠시 후 형광등에서 생기는 열에 못 이겨 고통의 몸부림을 치는 나방을 보고 있노라니, 창문 밖에서는 또 다른 나방이 그 불빛으로 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바로 그 속에는 먼저 들어간 동료가 죽음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오늘날의 인생을 이 나방에 비교한다면 크나큰 인간모독이 될까요? 끊임없이 성공의 불빛을 향해 몸부림을 치는 모습 말입니다. 나방이 그렇게도 몸부림치며 찾듯, 오늘날 인생이 몸부림치며 찾는 불빛은 과연 무엇일까요?


<칼리마>라는 나비가 있습니다. 이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펴고 있을 때는 찬란하고 아름답지만 날개를 접으면 누렇고 흉측스럽습니다. 그래서 ‘죽은 잎사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칼리마와 비슷한 사람들이 세상에 많습니다. 권력을 손에 쥐고 있을 때는 세상을 호령하고 훌륭하게만 보이던 사람들이 어느 날 죽은 잎사귀로 변하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목격합니다. 권력의 불빛을 쫓아 그렇게도 몸부림치더니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지개 빛 찬란한 돈 빛을 향해 날갯짓을 하며 몸부림쳐 퍼덕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위스의 여섯 종류의 화폐 그림이 주는 교훈 또한 의미심장합니다. 스위스의 50프랑 지폐에는 온 가족이 과수원에서 수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근로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100프랑 지폐에는 기독 군인이 말에서 내려 가난한 자에게 외투를 벗어주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물질은 가지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봉사를 위해 쓰여질 때 가치가 있다는 교훈인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500프랑 지폐에는 청년을 상징하는 샘이 그려져 있습니다. 물질보다 귀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참된 생명 그 자체라는 교훈입니다. 그런데 거금인 1천프랑짜리 지폐에는 죽음의 춤을 추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참된 생명을 하찮은 돈이 죽일 수도 있다는 경고가 아닐까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지만 잠은 살 수 없다. 책은 살 수 있지만 두뇌는 살 수 없다. 음식은 살 수 있지만 식욕은 살 수 없고, 장식품은 살 수 있지만 아름다움은 살 수 없다. 약은 살 수 있지만 건강은 살 수 없고, 집은 살 수 있지만 가정은 살 수 없다. 사치품은 살 수 있지만 문화는 살 수 없고, 오락은 살 수 있지만 행복은 살 수 없다. 그리고 십자가 목걸이는 살 수 있지만 구원은 살 수 없다.”


나방의 행복은 결코 형광등에 비치는 불빛이 아닙니다. 더 넓은 나방의 세계가 있습니다. 찬란한 태양이 비치는 낮에는 형광등 불빛을 쫓아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앉아야 할 자리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아래 있지 않으면, 인생의 풍요로운 자리를 보지 못합니다. 의의 태양 빛이 가리워지니 권력의 불빛을 찾아 헤매다가 죽어갑니다. 돈의 불빛을 찾다가 정작 행복은 놓쳐버리고 살게 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지, 형광등 안에서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동료를 보면서도 그리로만 들어가려고 합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말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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