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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을 사랑했던 남자 - 얀 후스(Jan Hus) (20171029) 등록일 2017.10.28
글쓴이 이영한 조회 41

2016년 5월 고고한 달빛 아래 잔잔히 흐르는 몰다우강에서 저는 건너편에 위치한 숨 막히는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비투스 대성당을 보기 위해 카를교를 건넜습니다.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답고, 또 아름다웠습니다. 몰다우강을 따라 걷다 사색에 잠기기를 여러 번, 쉬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다시 광장으로 돌아왔을 땐 비로소 내가 프라하에 온 명확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진실만을 찾아라. 진실만을 들어라. 진실만을 배워라. 진실만을 사랑하라. 진실만을 말하라. 진실만을 지켜라. 죽음을 두려워 말고 진실만을 사수하라.” 저는 이곳에서 얀 후스를 보았습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목숨까지 내어 던질 정도로 진리를 수호하고, 예수를 사랑했는지 뜨겁게 묵상해 보고 싶었습니다. 당시 최고 권력층이었던 교황청을 상대로 감히 면죄부 건을 비판하던 그의 경건한 올곧음은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라는 철저한 믿음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사실 그는 꽤나 잘나가는 학자였습니다. 명문 사학으로 일컬어지는 프라하대학에서 만 30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철학부 학장을 역임했으며, 37세의 나이에 총장에 올랐으니 시대의 부조리함에 눈을 감고 교회와 적당히 타협을 하면 얼마든지 부와 명예를 지키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혼탁한 시대를 밝혀줄 촛불로 그를 쓰셨습니다. 부패한 중세 교회를 향한 준엄한 일갈을 날린 옥스퍼드대학 교수 위클리프의 글이 그의 심장을 뛰게 했던 것입니다. 1414년, 그는 독일 남부 콘스탄츠에서 열리는 종교 회의에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기득권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으려는 종교 장사치들은 들판에서 그의 설교를 듣고 감동받은 대중의 바람을 뒤로 하고 후스를 감옥에 투옥시킵니다. 이제 그에게 강요된 것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라는 서슬 퍼런 협박뿐이었습니다. 신념을 번복하고 권력의 앞잡이가 된다면 얼마든지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죽음의 공포와 맞닥뜨려야 했던 그는 입을 열었습니다. ‘성경대로 논합시다.’ 그것이 그를 화형에 처하게 했습니다. 당시 성경에 무지한 대중들에게 보헤미아어로 설교하고, 라틴어로 『교회론(De ecclesia)』을 쓰는 등 얀 후스는 성경과 교회가 특정한 계층의 전유물로 귀속되는 것을 반대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 편에 세워져 있어야 하고, 대중에게 나눠져야 함이 마땅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얀 후스는 체코말로 ‘거위’란 뜻입니다. 그가 화형당할 적에 “너희가 지금 거위를 불태워 죽이지만 100년 뒤 나타난 백조는 어쩌지 못할 것”이란 말을 유언처럼 남깁니다. 마르틴 루터의 등장을 예언한 것입니다. 위클리프에서 얀 후스, 그리고 다시 마르틴 루터로 이어지는 믿음의 삼각 편대는 프로테스탄트 태동의 시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심각한 위기는 급속한 현재 진행형입니다. 뼈저린 책임감을 가져야 할 몇몇 교계 지도자들의 권력에 눈먼 무책임한 태도와 적잖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 해이는 후스나 루터의 시대와 꼭 닮았습니다. 흑암의 거짓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와 영혼들에 대한 사랑 찾기를 기도하며 목숨까지 내건 얀 후스가 우리 시대에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의 무거움이 오늘의 한국 교회에 거룩한 도전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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