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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애빌린 패러독스 (2018.02.11) 등록일 2018.02.13
글쓴이 이영한 조회 229

애빌린 패러독스(Abilene Paradox, 애빌린 역설)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한 집단 내에서 모든 구성원이 각자가 다 원하지 않는 방향의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함께 자신의 의사와 상반되는 결정을 내리는 데 동의한 역설을 말합니다. 애빌린 패러독스는 개인이 혼자 있을 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과 달리 집단속 에서 행동하고 판단할 때에는 집단 속 타인들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이론입니다. 이 말은 조지 워싱턴 대학교 교수 제리 하비(Jerry B. Harvey)가 자신의 논문《애빌린의 역설과 경영에 대한 고찰》에서 처음 사용함으로 유래된 말입니다. 그는 그의 논문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1974년 7월 어느 일요일에 섭씨 40도를 웃도는 지독하게 무더운 텍사스에서 제리 하비 교수가 경험한 일입니다. 텍사스라는 곳은 모래 먼지가 벽을 뚫고 집으로 들어와 사람들을 괴롭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가족들은 선풍기 앞에서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숨죽이며, 더위가 시간과 함께 빨리 가버리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리 부부와 그의 장인 장모가 한자리에 모인 주일 오후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TV 앞에서 한 손에는 얼음이 든 물 잔을 들고 무기력하게 그저 앉아 있는 일 뿐이었습니다. 그때 장인어른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애빌린에 다녀올까?” 제리 교수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무더운 날씨에 어딜 가요? 지금은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차요. 더구나, 애빌린은 여기에서 53마일이나 떨어져 있는데 가는 데만 2시간이 걸린다고요.” 그 때 제리 교수의 아내가 말합니다. “좋아요. 아버지. 애빌린에서 저녁이나 먹고 오죠. 당신은 어때요?” 제리 교수는 애빌린이 떠올랐습니다. 그곳은 식당도 제대로 없고, 그나마 있는 것들도 아주 형편없는 그런 곳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더구나 지금 그들의 차는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58년식 구식 자동차였습니다. 겨우 움직이는 것이 다행인 그런 차를 타고 먹을 곳도 변변치 않고 볼거리도 없는 애빌린에 왜 가야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내의 말에 제리 교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좋지. 어머니도 괜찮으세요?” 제리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하는 것보다는 아내와 장인의 기분을 맞춰주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장모님도 좋다고 동의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살인적인 더위에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낡은 차를 타고 텍사스 서부의 모래 먼지를 뒤집어쓰며, 왕복 4시간 동안 차를 타고 애빌린에 갔다 왔습니다. 그 곳에서 그들이 한 일은 형편없는 식당에서 억지로 한 끼를 때우고 온 것이 전부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서로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썰렁한 분위기를 깨려고 제리 교수는 “참, 재미있었네요. 그렇죠?”라고 말합니다. 그 때 장모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난, 별로 재미없었네. 음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래도 당신이 가고 싶어 하지 않았소?” “나는 가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가고 싶어 하니까 동의했던 것뿐이에요.” 제리 교수의 장인과 장모의 말다툼에 제리 교수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습니다. 장인은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분위기가 어색해서 그것을 깨려고 ‘애빌린에 갈까?’라는 말을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것입니다. 물론 장인도 애빌린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리 교수의 부인은 자신의 아버지가 애빌린에 가고 싶어 하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제리 교수의 부인도 애빌린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장모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고 싶어 하니까 나도 가고 싶은 척을 해야 상대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4명은 그들 중 애빌린에 가고 싶어 했던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만장일치로 애빌린에 갔다 왔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다원적 무지(多元的無知)라는 말과 흡사합니다. 일반적인 여론형성 과정에서 사회적인 쟁점에 대해 소수의 의견을 다수의 의견으로 또는 다수의 의견을 소수의 의견으로 잘못 인지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지금 평창 올림픽이 개회되고 축제를 벌여야 할 오늘 우리 사회가 이런 애빌린 패러독스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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