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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사랑이 신앙입니다 < 마태복음 22:37-40 >(20190929) 등록일 2019.12.19
글쓴이 관리자 조회 62


오늘 본문에 예수님에게 찾아온 바리새인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고 중요한 지를 물었습니다. 즉 신앙이 무엇이냐 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유대인들 사이에 이런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쉐마의 한 부분인 신명기 6:5과 레위기 19:18을 택하여 율법, 신앙생활을 설명합니다. 즉 이 두구절에서 말하는 사랑이 종교적 그리고 공동체적 모든 삶의 원리입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강령이라는 말은 ‘달려있다’는 뜻입니다. 즉 율법과 예언서의 모든 가르침이 사랑에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사랑이 신앙입니다. 사랑이 신앙인데 그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모든 행동으로 예수님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3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주를 사랑하라는 말은 예수님을 소중히 여기라는 의미입니다. 혹여 살아가다 보면 소중한 것이 생길 수 있으나 그것도 마침내는 예수님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되도록 한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0:37에서 예수님은 좀 더 과격하게 표현합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라고 말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며 가족, 재물 같은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보다 주님을 더 소중히 여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라면 그럼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같이 다른 이의 행복을 열정적으로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39절에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마태복음에서 나오는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현대 상담학자들처럼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라 자기애를 중단하고 이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자기 사랑에서 벗어나라는 뜻입니다. 즉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이 있는 곳에 진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고 희락이 있으며 행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기적인 우리가 어찌 하나님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만큼 다른 이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7장 12절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것은 소위 황금률이라고 불리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 앞 문맥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기에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난 후 12절에 “그러므로”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이 너희의 아버지이고 그분이 너희들을 사랑하고 응답하고 보호하시고 좋은 것을 주시니, 사랑하시니 그러므로 “사랑하라”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우리는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는 놀라운 복음이 있을 때 우리는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깨달을 때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우리 사랑 안에 거하는 천국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멋진 사랑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