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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영원하신 하나님이 함께하는 새해 <창 21:22-34> (20180121) 등록일 2018.01.25
글쓴이 관리자 조회 204

우리는 새해가 되면 새로운 세상, 그리고 가급적 이상적인 세상이 도래하기를 기원합니다. 인류 역사에 가장 간절한 어떤 염원이 있다면, 진실로 이상적인 세상이, 소위 유토피아(Utopia)가 이루어지기를 열망해 온 것입니다. 아마 유토피아란 단어는, 사람이 만든 단어가운데 가장 역설적인 단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유토피아(Utopia)'라는 단어는 ’이상향‘이라는 단어로 번역되지만, 본래 이 단어의 어원은, ’그런 곳은 없다‘라는 뜻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본래 이 ‘유토피아(Utopia)'란 단어는, 1516년 영국의 사상가였던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유토피아”라는 책을 쓴 데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헬라어인데, ‘유(ού)’라는 단어는, ‘없다’는 뜻이고, 이 ‘토피아’란 단어의 어원은 ‘토포스(τόπος)’라는 말인데, 이 ‘토포스(τόπος)’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유토피아(Utopia)’란 말을 직역하면, ‘그런 장소는 없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유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이상향’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안의 ‘정욕, 욕심’ 그것이 모든 문제의 발단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직면하는 문제의 해결을 시도할 때, 그것을 구조적으로 밖에서만 해결을 시도하려고 하는 데에는 항상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었던 본문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소위 블레셋 지역의 ‘그랄’이라는 지역의 통치자였던, 아브라함의 적이었던 아비멜렉이라는 사람과 전쟁하는 대신에, 평화를 만들고, 평화의 조약, 평화 언약을 체결하고, 이제 땅을 분할받고 정착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모든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도와주신 것을 깨닫고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그 아비멜렉과 더불어 평화의 조약을 체결하였던 그 우물가에 나무 하나를 심습니다. 기념식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 감사해서 거기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 하나님을  ‘영생하시는 하나님’ ‘영존하시는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이라고 부릅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있어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시사하는 의미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이라고, 오늘 본문에 소개되고 있을까요?


첫째로, 그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자기의 적이었던 아비멜렉과 화친의 약속, 평화의 약속을 할 수가 있었던 것도, 바로 이 하나님께 대한 신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본래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으로 보여 집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접촉하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구나’ 이런 것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이 어떻게 시작됩니까? 22절에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아브라함, 너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로구나” 그래서 “너 나하고, 싸우지 말고, 우리 좀 평화롭게 지내자.” 그래서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사이에 평화의 조약이 체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을 했던 우물가를 ‘브엘세바’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약속을 해놓고, 정말 그 약속을 통해서, 평화를 갈구하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부르기를 ‘영원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이렇게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약속을 지켜주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해를 맞이하면서, 무엇보다 이 하나님의 말씀, 거룩한 말씀, 약속의 말씀, 생명의 말씀, 이 말씀 붙들고 한해를 걸어가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둘째로, 그 하나님은 관계를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다고 말할 때, 하나님은 영원 속에 그냥 가만히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하나님이 이 짤막한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인생들에게 다가오셔서 개입하시고, 그래서 그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을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열심히 활동하고 계시는,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 정말 많지만, 한 가지만 말한다면 그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는 일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일”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를 인격적으로 주님을 닮은 모습으로 성숙시켜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맺어 만드시는 사역을 위해서 ‘관계’를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면, 원수라도 화목하게 하시는 하나님. 그렇습니다. 관계가 새로워지면,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 그 하나님께서 이 한 해 동안 저와 여러분이 걸어가는 그 발걸음마다, 관계를 새롭게 해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세 번째, 그 하나님은 예배자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이렇게 고백할 때, 이것은 상대적으로 영원하지 못한 유한한 인간의 모습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라고 고백할 때, 그 고백은 바로 유한한 인생이 그 영원하신 하나님을 향해서 드려지는 예배의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3절에서, “아브라함이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이 “불렀더라” 는 예배의 행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찬양하고, 그 분을 높여 드리는 예배의 행위를 나타내고 있는 말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예배의 자리에서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정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 그리고 정말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면, 그리고 그 축복 속에 예배의 자리에서 일어나면, 우리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고, 극복하지 못할 일이 없고, 하지 못할 일이 없어집니다. 그것이 예배의 축복입니다. 그것이 예배의 영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들 모두는 성공적인 예배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의 축복을 붙잡고 사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예배의 축복, 예배의 비전을 붙들고, 한 평생을 살아가는, 그리고 이 한해의 발걸음을 옮겨가는 여러분들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